팔랑귀를 위하여 [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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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이 있다. 귀가 너무 얇은 나머지,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비교적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말에 의해 확 바뀌는. 설사 그것이 자신이 원래 판단했던 것과 정 반대의 결론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되고 마는.

나는 비교적 일에 있어서는 팔랑귀가 아니다. 그냥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꾸준하게 내가 할 일을 한다..기 보다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편이다. 왜냐면 뭐라고 듣긴 들었었는데 그런 게 잘 기억이 나질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 (타로카드점이나 사주풀이 등등) 같은걸 봐도 당시에는 화들짝 하며 '아니 내 앞에 그런 운명이?' 하면서도 막상 그 일이 닥치면 이게 예견되었던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홀랑 까먹는다. (누군가는 점은 나 같은 인간이 보는 거라고 하더군. 듣고 까먹는 게 점보는 최고의 자세라나?) 하나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점이라는 형태를 취한 모든 것들이 나는 ‘말’로 먹고 살 팔자이지 '펜'으로 먹고 살 팔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귀는 분명 팔랑귀 여서 어떤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얇아 주신다. 어찌나 얇은지 귀 안의 핏줄이 다 비칠 정도이며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가 지나가느라 혈관이 움찔거리는 것 까지 다 보일 지경이다. 그 어떤 부분이라 함은 바로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평가이다.

예를 들어 안면만 있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사람과 꽤 친한, 또 나와도 친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근데 나와 친한 이 사람이 내가 잘 모르는 그 사람에 대해 약간이라도 험담을 해 버리면? 나는 그만 그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가졌던 호감이 싹 사라져 버린다.  

 

인간들은 원래나 뒷담화를 좋아하는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여자들과 있으면 뒷담화를 들을 일이 많다. 그러나 그저 살짝 까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완전 깔아뭉개는 뒷담화 같은 경우. 나는 도저히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가 이토록 침을 튀기며 나쁘다는데 (주로 나쁜 년이라고 한다만은) 내가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거나 그 사람과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어디까지나 관계의 오해 내지는 특수성에서 오는 뒷담화이다. 그러니까 지금 씹히는 그 사람이 정말 나쁜 인간이어서가 아닌. 마침 내가 잘 아는 누군가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를 만들지 못했거나, 운이 없어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모두에게 다 나쁜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는 나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일 수도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그런 소리를 듣고 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갖게 되고 그 사람이 내게 친해지려고 접근하면 몸을 사리게 된다.

 

친한 후배 J양이 있었다. 어느 날 J양의 소개로 나는 교수인 K양을 만나게 되었다. K는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독신이었는데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말이 잘 통했다. 그날 굉장히 유쾌했다 생각하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J양은 심하게 K양을 씹었다. J가 사람을 좀 잘 씹는 편이긴 하지만 워낙 J와 오래 알고 지낸 지라 나는 J의 말에 심하게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분명 K양의 잘못이었고, 잘 알고 지낼 필요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K양은 계속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모처럼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났다며 그녀는 기뻐했고, 만나서 밥을 먹자, 차를 마시자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나는 그 모든 말에 건성으로 '그래요. 시간 내서 한번 그러죠' 정도로 넘겼다. 내 마음 속에는 이미 K양은 J의 표현대로 나쁜 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꾸 생각해보니 이게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J양이 말한 K양의 나쁜 점은 오직 J에게 잘못했기 때문이며, 그 잘못이 다 사실 그대로라 하더라도 그건 내게 한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간혹 연락이 오는 K는 전혀 재수 없지도 않고 예의 발랐으며 적어도 나에게는 잘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K양에게 좀 더 곁을 내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J와 함께 만나지 않고 K와 단 둘이서 몇 번을 만났다. 물론 머릿속에는 J양이 한 말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 겪어본 K는 J양의 표현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비록 J에게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나는 K의 이상한 점이랄 지 나쁜 점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나는 J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K는 꿈에서라도 J의 욕을 하지 않았고 늘 좋은 말만 해 주었다.)

 

J는 사실. 말이 좀 많다. 뭐 나도 말이 많은 인간에 속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닌데, 그러다 보니 말실수도 잦다는 것이 문제이다. 떠올려보니 J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약간 좋게 얘기를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J는 나에게 길고 긴 하소연과 뒷담화를 했다. 그래서 나는 J덕분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선입견을 갖게 되었고. 우연히 라도 그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날이면 정말이지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문제는 J였다. J는 그렇게 씹고 또 씹어서 마른 오징어가 물오징어가 될 때까지 씹은 사람인데 그들을 잘도 만나고 다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에게 자신과 나만 아는 비밀 이라고 얘기한 것을 자기가 씹은 그 사람 (이를테면 K양) 에게도 말을 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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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도 나에게만 말한다고 해 놓고서는 (물론 나는 굳이 나만 아는 J의 신상 같은 건 필요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같이 다니는 피부관리샵을 갔더니만 피부 관리사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 참 입이 싸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씹어댄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J는 그냥 씹는 것 같았다. 정말 싫어서 씹고, 그래서 다시는 안 보는 게 아닌. 자기가 아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씹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 나는 도대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J의 안주거리로 씹혔을까? 생각하니 좀 아찔했다. 여태 그녀가 사람들에 대해 씹은 수위를 생각할 때 나 역시 천하의 나쁜 년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음..어쩌다 얘기가 이리로 흘렀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요는 이제는 누가 누굴 씹는다고 해도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거기에 너무 많은 무게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가 씹건 말건. 그건 그 사람과 그의 관계이지 절대 나와의 관계가 아니다. 내 관계도 잘 못하는 주제에 남이 남에게 잘못 한 것까지 간섭한다는 건 너무 넓은 오지랖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 만 듣고 어떤 사람을 판단해버린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무척 좋은 사람이겠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너무 나쁜 인간일수도 있으니까.



Comments

공감가는 글인데 댓글이 없네요 ㅎ
저도 팔랑귀인 편이라 주변에서 그렇게 씹으면 선입견이 생겨요
근데 막상 그사람을 직접 만나면 얘기 들은거랑은 또 다르죠
그래서 언제나 그런 얘기들은 들어주기만 하고 흘리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들어보면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기 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의 경향이 큰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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