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다음 날 [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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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그냥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다. 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그와 했던 모든 말들을 되풀이하고 그와 나누었던 기억들은 전부 내 가슴을 찔렀다. 차라리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좀 덜 사랑할 걸 싶을 정도로. 나는 사는 게 힘이 들었다.

세상은 노래 가사처럼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제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게 마감 독촉을 해대는 기자들의 전화들까지 여전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건너 와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멀쩡한 세상이, 내가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그렇게 잔인해 보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계절의 여왕,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이 아닌가. 이 봄에 피는 꽃과 나무 그 어느 하나도 나는 제대로 눈 여겨 볼 여력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또 얼마나 울었는지 알 수도 없는 낮과 밤이 지나갔다. 나는 무기력하게 마치 권투 시합에서 KO패를 당한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선수처럼 내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화장실에 가야하고 가끔은 목도 마르다는 것이, 그런 육체를 갖고 있는 내가 너무 미웠다. 아무런 노래도 듣지 않았고 아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죽었냐?’ 라는 문자에 ‘살아있다’ 라는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칼로 저미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겠다든가 어떤 것을 되돌리겠다는 것이 아닌 그냥 죽을 것처럼 보고 싶기만 했다. 이제 다시는 그 얼굴을, 그 손을, 그 어깨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마지막으로 찬찬히 얼굴이라도 뜯어보고 싶었다. 그 사람에게 전화하지 않기 위해 태워버린 명함이, 지워버린 전화번호가 밤이면 유령처럼 살아나 둥둥 떠 다녔다. 그러면 나는 이를 악 물고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면 아침이 왔고, 아침이 오면 이 지옥을 오늘 또 하루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수면제를 왕창 먹고 잠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일어나도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울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잊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만 일상이라도 멀쩡하게 영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그 사이에 책 계약이라든지 여러 가지 일이 없었다면 나는 더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하고 힘들어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은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아니,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저절로 내 입에 밥을 넣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밥벌이를 해야 했고, 그 사람을 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할 정도로 보고 싶다. 그렇지만 우연히 라도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살고 싶다. 나 없이도 일 잘 하고 블로그에 여전히 따뜻한 글들을 올리고 배경 음악으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앙코르금지 요청을 깔아둔 그 사람을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그냥 그건 그 사람의 이별의 애도 방법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일상을 영위할 것. 그게 그 사람이 택한 것이라면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울지 않고 나처럼 일상이 잠시나마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미워할 수는 없으니까.

 

한동안 무너졌던 일상을 차곡차곡 하나씩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온통 먼지만 앉아있던 내 마음을 청소하듯이 집안 곳곳을 쓸고 닦았다. 예쁜 물잔 들을 새로 사고 나를 위해 안고 오기도 버거울 만큼 꽃을 샀다. 슬퍼하느라 그냥 보내버린 벚꽃을 다시 그렇게라도 보상 받고 싶었다. 제대로 일을 시작했다. 날마다 조금씩 정해진 양을 어떤 마음 어떤 상황이라 하더라도 마치 직장인처럼 성실하게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핸드폰 벨 소리를 브로콜리 너마저의 앙코르금지 요청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내가 다시 부르지 않겠다고, 혹시나 그가 바란다 하더라도 끝나버린 사랑을 다시 찾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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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랑들에서도 역시 아팠었다. 그때도 아마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지금이 가장 아프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프고 힘든 일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때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마음을 닫아버릴까도 생각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사랑을 했고 이런 이별도 한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사랑한 순간이 아파한 순간보다 훨씬 더 많았다. 시간의 짧고 김이 아닌 내 마음의 시간들이 그랬다.

 

이제 나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난다면 또 지금처럼, 혹은 지금 보다 더 아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 사랑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그 아름다운 일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배우는 것이 있다면 사랑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더 알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하면 행복한 만큼 그 뒤에 찾아오는 헤어짐은 끔찍할 정도로 아프지만 말이다.

 

그는 내 서랍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아마 다시 열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그걸로 되었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그토록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그렇게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그의 기억만으로 충분하다. 헤어진 다음날은 온다. 헤어지면 모든 게 끝나버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헤어진 다음날은 온다. 아무리 아프게 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어차피 이 세상일의 대부분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는 않으니까. 이것 역시 그러려니 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 어쩌면 헤어진 다음날 살아 있는 것,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지 않고 사는 것.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 그래서 그 모든 기억을 끌어안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헤어진 다음날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Comments

바로 전 남자친구 헤어졌을때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헤어지는게 그렇게 힘든건 첨 알았었어요
이별을 안해본것도 아닌데..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지만도 가끔 그사람 생각이 나요
블루버닝님이 그사람에 대한 내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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