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 [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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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학습을 한다. 응애 밖에 못 하던 아기가 옹알이를 하고 마침내 ‘엄마’ 하고 말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학교를 들어가 글자를 배운다. 그리고, 그리고 수많은 것들을 배운다. 양치하는 법, 젓가락을 사용하는 법. 그리고 언젠가는 만남과 헤어짐 같은 추상적인 것들도 배우게 된다. 한번 배운 것들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도 다시 그것들을 사용할 순간이 오면 ‘툭’ 하고 몸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오랫동안 닫았던 피아노 건반을 다시 열었을 때, 정확하게 열 손가락을 제 자리에 놓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어릴 때 배운 자전거에 오랜만에 올라갔을 때 자동적으로 중심을 잡고 페달에 발을 올려놓는 것처럼.

하지만 어떤 것들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다. 세상에 혼자 같은 외로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이런 것들은 아무리 학습을 하고 반복을 거듭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된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약해지는 것처럼, 오히려 반복된 경험들 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무서운지 만을 더 배울 뿐이다.

어느 순간엔가 상대가 나에게 더 이상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이별을 생각한다. 여기가 끝인가? 그렇게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사이가 정말 이렇게 미지근해지는 것인가. 언젠가 먹다가 남은 맥주가 아까워서 랩에 싼 다음 다시 고무줄로 묶고 뚜껑까지 닫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적이 있었다. 그러다 삼일쯤 지났나? 맥주 생각이 간절해서 그 맥주를 다시 꺼냈다. 그런데 그 맥주에는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알콜도 있고, 냉장고에 넣어서 적당히 시원하기도 했지만 맥주의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김이라 부르는 그 알싸하고 톡 쏘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사랑도 그런 순간이 온다. 김빠진 맥주처럼 그렇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고야 만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설레는데, 아직도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고, 내가 먼저 만나자고 말하면 나를 지겨워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한때는 내 모든 걸 다 알고 싶다고, 그래서 큰일이라고, 자꾸 내가 궁금하다고 말 하던 사람이 언제부턴가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들을 자주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히 했던 말인데도 그는 처음 들은 얘기처럼 낯설어한다.

 

그에게 아주 곤란한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까지 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일이 대충 해결이 되자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보고 싶다고, 나는 이 와중에 그런 말이 나오냐며 기막혀했지만 사실 기막히지 않았다. 그냥 너무 좋았다. 이런 순간에도, 그 상황에서도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고맙고 기뻤다.

술을 마시면 그는 자주 전화를 했다. 술이란 게 원래 그렇듯, 그도 술을 마시면 약간은 말랑해지고 또 조금은 귀여워지곤 했다. 그런데 이제 술을 마실 때 그는 더 이상 전화하지 않는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잠깐 전화할 뿐. 그는 이제 술을 마시면 내가 생각나는 게 아닌, 그 술자리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익숙해짐? 그래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언제나 설레고 언제나 처음처럼 그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점점 견디기 힘들어진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헤어짐을 겪으면서도 조금도, 아니 약간도 좀 더 쉽게 헤어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왜 이런 일들은 처음인 것처럼 혹은 처음보다 더 아픈 것일까? 이런 것들은 원래 끝내 배우지 못한 채,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김빠진 맥주를, 그냥 알콜이 남아 있으니 술은 술이라며 마셔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싱크대에 쏟아 붓고 새 맥주를 따야 하는 것인지. 이 사랑을, 사랑이란 게 원래 시간이 지나면 미적지근해지기 마련이라며 그냥 견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별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고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인지. 절대로 이 사랑 만큼은 저울에 달지 않겠다고 그래서 내 쪽의 무게가 더 나간다고 해서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시 나란 인간의 한계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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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도 따뜻했던 커피가 언젠가는 식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식어가는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다. 언제까지고 가지고 가고 싶던 설레임들. 밤새 원고를 쓰다가도 아침에 걸려오는 그의 전화 한 통. 그 속에 그의 입김 까지도 너무 아까워서 추우니까 빨리 끊고 회사로 들어가라고 말하던 순간들. 일 때문에 미팅을 하다가도 그의 전화가 걸려오면 일 전화라고 둘러대고 나가서 받곤 했던 순간들. 매번 보는데도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보다가도 황급히 전화기를 켜고 문자를 보내는 척 하던 순간들. 손을 잡고 걸었던 그 많은 거리들과 함께 마신 커피들.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언젠가는 조금씩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던 사람. 나는 정말 다 잊을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알던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세상이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이별을 했는데 그 다음날 촬영이 하필이면 애정씬이었다고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참 직업을 골라도 더러운 직업을 골랐구나. 매일 남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만 진짜 내 얼굴은 언제나 감춰야 하는 그런 아주 몹쓸 직업을 가졌구나. 그때 나는 그와 막 사랑을 시작하던 때였고 그런 내 마음을 글로 쓸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내 직업은 얼마나 괜찮은가 하고 생각했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일로도 연결시킬 수 있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런 순간조차 먹고 살겠다고 이 마음을 글로 찍어내는 내가, 이 순간 제일 징그럽다.

 

아마 죽을때까지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사랑과 다시 헤어지게 되더라도.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는 말을 머릿속에는 박고 살지만 아직 가슴으로는 제대로 품지 못하는 나에게는 언제까지고 그럴 것이다. 이별은 항상 힘들고 할 때마다 새롭다.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은 이미 이별이 결정이 된 그 다음이 아니라 이렇게 이별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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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때문에 쓰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용돈줄테니 고마해라. 안타깝다, 조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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