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에서 ‘달팽이’까지 [블루버닝의 S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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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나는 나무를 너무 좋아했었다. 그러나 정작 산을 오르는 것은 싫어했기 때문에 늘 수목원이나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좋아했다. 나무만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봄인 이유는 나무에 새싹이 돋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막 나무를 뚫고 올라온 연한 초록빛의 새싹들은, 언제나 저걸 따다가 슥슥 비빕밥을 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필 그것들을 먹고 싶은 이유는 사람이 뭔가를 좋아하면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본능 같은 것이리라.

당시의 나는 번화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것 보다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햇볕이 따사로운 봄날이면 나는 운동화를 신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산책하길 즐겼다. 와인이 지금처럼 잰척하는 술이 되기 이전, 그냥 약간 특이하고 분위기 있는 술 정도였을 때 그 산책로의 끝 길에 있는 작은 와인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와인을 구경하고 고르는 것도 좋았다. 가게 주인은 노부부였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직접 와인을 구입해 온다고 했다. 우리는 별로 비싼 걸 사지도 않으면서 꽤 오랫동안 와인의 라벨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는데, 그들 부부는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매번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탈리아를 다녀왔을 때는 우리에게 와인 한 병을 선물해주기도 했었다. 아마 그들 눈에는 우리가 아주 어린 부부들처럼 보였던 것 같다. 우리의 차림새는 전혀 데이트하는 사람들의 그것이 아닌, 집에서 막 뒹굴다가 동네나 한 바퀴 돌아볼까? 하고 나온 것 같았으니까.

내가 하도 나무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가을만 되면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과 달리 이제 더 이상 나무가 나무 같지 않다며 슬퍼하는 나를 보고 그는 ‘매미’ 라고 불렀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애칭 치고는 약간 이상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지만, 나는 다른 어떤 호칭보다도 ‘매미’ 라는 애칭을 사랑했었다. 땅 속 깊은 곳에 있다가 여름 한철 나무 위에 올라가서 목청 다해 울어 젖히는 매미처럼 살고 싶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땅 위에서의 삶을 오래 즐기기 보다는 그렇게 단 한 순간이라도 불같이 살고 싶었었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매미’라고 불렀다면 그런 못생기고 징그러운 생명체를 별명으로 부르냐며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그랬기 때문에 나는 매미가 징그럽지도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혼자 ‘매미’ 라는 애칭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면서 좋아했었다.

 

요즘의 나는 비를 참 좋아한다. 원래부터 비를 좋아하긴 했었지만 그때처럼 비가 오면 괜히 쓸쓸해지는 기분이라든가 센치한 느낌이 들어 뭔가를 끄적거리고픈 충동을 느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참 현실적인 이유지만 나는 비가 오면 그 습도를 사랑한다. 나이가 들고 점점 세포가 메마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미스트를 뿌리고 가습기를 트는 것만으로는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 같은 것이 비가 오면 완전히 해소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요새는 비만 오면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고 비닐 가방을 손에 낀 채 밖으로 나가서 오랫동안 비를 맞다가 돌아오곤 한다. 그 촉촉함이 마치 나를 다시 십대 소녀로 되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비가 왔다. 일기예보에서는 별 말 없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쏟아진다 라고 표현할 만큼의 비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그냥 좀 비를 맞고 걷다가 적당한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비를 피하자고 했다. 빠른 걸음으로 비를 피하는 그와 달리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걸으며 비를 맞았다. 비 맞으면 머리 빠진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도 않았다. 영화관은 내가 견디기 힘들만큼 건조했었고 그만큼 비는 반가웠다. 왜 걸음을 빨리 하지 않냐는 그의 질문에 비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애 같다고 했다. 이 나이에 애 같단 소리를 듣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달팽이’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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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달팽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에게 쓰는 호칭으로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생명체이다. 굼뜨고 느린데다 괴상한 촉수 같은 것도 있고 외부에서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면 이고 있던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그리고 무엇보다 온 몸으로 끈끈한 액체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달팽이. 그래도 나는 그가 나에게 ‘달팽이’ 라고 불러주는 게 좋았다. 예전의 ‘매미’처럼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달팽이를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되도록 상처를 받고 싶어 하지 않고 두려움이나 겁도 많아졌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모든 것들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 달팽이처럼 쏙 들어갈 수 있는 껍질이라도 이고 다니고 싶을 만큼. 예전에는 누군가가 공격을 해 오면 나도 맞받아쳤지만 지금은 그냥 움츠리게 된다. 마치 달팽이가 껍질 안으로 몸을 숨기듯이. 또 내가 작업실에 눌러앉아 끊임없이 찍어대는 글들은 달팽이가 내보내는 끈끈한 액체와도 닮아있다. 너무나 글을 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쓰지 않을 수 없어서, 혹은 쓸 수밖에 없는 소위 팔자 같은 것. 아마 달팽이도 자신의 끈끈한 액체를 팔자소관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 모든 복잡한 생각 끝에 나에게 ‘달팽이’ 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저 습한 곳을 찾아 다니는, 물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달팽이와 내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나는 내가 ‘달팽이’ 라고 불리는 것이 좋다. 그가 ‘달팽이’ 라고 발음을 하면 내 이름보다도 더 나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 내게 불려졌던 별명들은 거의 만화 주인공 중에서 못된 여자 캐릭터였다. 이라이자라든가 마녀라든가. 나는 거센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은 아이였다. 싸움을 걸지는 않되 일단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겨야 했고,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달팽이가 되었으니 나는 상처를 받지도 주지도 않아야겠다. 더는 세상과 맞서지 않고 그냥 달팽이처럼 조용히 습기를 찾아 다니면서 야금야금 삶을 소모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그에게 ‘달팽이’ 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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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달팽이 좋아....달팽이...
흠..달팽이 좋아....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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