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 [블루버닝의 S다이어리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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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대부분은 갱엿 같다. (아니 물엿인가?) 먹고 살아야 하고,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조금은 비겁해지기도 하고 가끔은 내 자존심을 바닥까지 떨어뜨려야 하는 비참한 상황과 직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맞서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잘,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참아간다. 하루를 참고 이틀을 참고 삼 일을 참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리라 믿으면서.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이런 우리의 밋밋한 일상에서도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로또에 당첨이 된 것도, 그렇다고 승진을 한 것도 아니지만 이 강퍅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순간들. 지나고 나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작은 일들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오는 것이다.

 

최근 나는 가까운 지인을 통해 한 사람을 소개받았다. 물론 그녀와 나는 오랫동안 서로 얼굴과 안면 정도는 익히고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외국에서 유학 중이던 그녀는 방학 때 잠깐 한국에 얼굴을 비췄고, 때마침 조건이 되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를 만났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보긴 했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고 그냥 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 나와 동갑의 여자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다르겠구나 하는 정도의 인상이 전부였다.

3년 전. 그녀는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정작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에 그녀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그만 양쪽 발목이 똑 하고 부러져버렸다. 굳이 병문안을 갈 만큼 친밀하진 않았지만 그녀와 친한 친구가 역시 나와도 친했기에. 그리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이 마침 집 근처라서 나도 친구와 함께 문병을 갔다. 뭘 사가야 할지 몰라서 꽃을 사려다가 그건 그녀와 나 사이에 어울리지 않은 짓 같아서 롤케잌을 사가지고 갔다. 가서 철심을 박은 그녀의 퉁퉁 부운 다리를 보고, 그럼에도 표정은 밝은 그녀를 보면서 참 마음도 넓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나 같았다면, 그렇게 사고를 당해 4개월 동안 꼼짝 않고 병원에 누워서 뼈에 철심을 박고 2번의 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죽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큰 수술이 끝난 그녀는 조용한 개인 병원으로 옮겼고, 1인 실에서 학생들을 그리로 불러 레슨까지 했다. 나는 돈독이 올라도 단단히 오른 여자구나 했다.

마침내 그녀는 퇴원을 했고, 목발에 의지 하나마 조금씩 걷고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와 나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동안 함께 만나던 내 친구의 경우 낮에 직장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낮 시간이 펑펑 남아도는 영세 자영업자들 (우린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과는 활동 시간대가 달랐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와 나는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고 쇼핑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우린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술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 일정한 수입 없이 일 하는 만큼 벌고, 놀면 노는 만큼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작업실을 두고 있다는 것까지. 그러나 여기까지는 약과였다. 그녀와 나는 결정적으로 너무나 비슷한 성향의 엄마를 두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엄마는 나에게 엄청난 기대를 걸었었다. 얘는 꼭 공부로 대성할 아이라며 늘 나에게 니가 제일 잘났고 넌 천재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도 비슷했다. 3살 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4살 때 지금의 악기로 바꾸어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는 얘기하면서 혹시 우리 엄마가 같은 거 아니야? 할 정도로 그녀의 엄마와 나의 엄마는 많이 닮아 있었으며 심지어 두 엄마를 함께 아는 친구는 ‘그래 니네들 엄마 생긴 것도 좀 닮았어’ 라고 말했다. 사실 생김새는 두 사람 다 딴판이었지만 오랫동안 비슷한 생각에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끼리의 분위기라는 것이 많이 닮아 있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그녀와 나는 드라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리는 공통분모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와 내가 노희경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의 광 팬이라는 것이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를 외우고 있음은 물론. 가능하다면 한번쯤 그 드라마 안에 들어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그래서 나는 당장 그들이 사는 세상 DVD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볼 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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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그녀는 오후 2시쯤에 일어나 막 작업실 청소에 돌입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 8시 이전의 레슨이 다 취소되어 시간이 남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같이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자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보고 싶었지만 함께 보고 싶어서 참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그녀는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고 나는 시나몬 가루를 많이 뿌리고 시럽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카푸치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의 첫 회, 첫 장면부터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치는 대사에 최고야 최고 라는 말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쓰러지기도 하면서, 또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심리를 파악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동네 아줌마들처럼 감놔라 배놔라 하며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았다. 그녀가 레슨을 가기 전까지 딱 2회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명장면 명대사를 가슴 깊이 새겨가며, 가끔 송혜교나 현빈의 독백을 따라 해 가며 정말 열심히 봤다.

같은 영화, 같은 음악, 같은 책, 그리고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모를 동질의식이 생긴다. 어쩌면 그것은 이 많은 사람들과 그만큼 다양한 취향들 속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 혹은 내가 남들과 크게 다르거나 이상하지는 않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겨우 드라마 시리즈 한편으로 그 이전에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신 그 어떤 순간보다 서로 친해졌으며, 극중 작가가 억대 작가라는 말을 들은 그녀가 ‘니가 억대 작가가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줄게’ 라는 말에 나는 ‘그래, 내가 니 덕에 억대 작가가 되면 내가 까짓 니 악기 확 바꿔준다.’ 라고 응수했다.

 

삶은 대게 해야 할 일 혹은 내가 하겠다고 정해놓은 일들 투성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일에 치여서 산다. 그게 회사건 우리 같은 프리랜서건 아니면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이건.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팍팍한 인생에서도 가끔은 편히 널브러질 수 있는, 그러나 정신만큼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록 찰나라 할지라도, 그것이 남에게 말하기 뭣한 너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고 소모할 권리가 있다. 왜냐면 그런 것들은 그리 자주 오지도 않으며, 그 모든 시간들을 견디려면 가끔은 그렇게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 드라마처럼 만들 수 있을까?



Comments

아웅, 가장 친한 친구 녀석한테 회의가 짙어지는 요즘, 이 글이 왜케 아프노.
아직도 이런 오글오글거리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니.. 연통이 망해가는 것과 이런 허접글이 연재로 계속올리는 것은 동전의 양면
난 이런 밋밋한글도 좋터라..
근데 요세 왜케 글올리는게 띄엄띄엄이여...점더 올려줘
30년절친이 넘 밉다...요즘..그쉐이 와이픈 더 밉다....내 인생 걍 다름을 인정해줬으면....이글이 넘 좋다..
인생의 드라마 ㅜㅜ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디 있을까요. 그 속에 들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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