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지정 2

혜원 2 2,167
  

"삭제하세요. 안 하시면 가만 있지 않겠어요."

 

이젠 명령조다.

 

"필름이라서..."

 

'지랄 옆차기 하고 있네, 가마니는 창고 가서 찾아보시지.'라고 쏘아 보고 싶었지만

 

웃기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았다.

 

"그럼 당장, 빼내서 없애야겠네요."

 

명령조가 비아냥이 업고서 고막에 쑤셔 박힌다.

 

"거, 좀 너무하시네! 얼굴이 찍힌 것도 아니고 겨우 우산하고 장단지 조금 나왔다고 필름을 빼라 마라. 여기에 아가씨 사진 말고도 다른 사진도 있는데 그냥 필름 뽑아버리면 다른 컷들은 아가씨가 책임질 겁니까?"

 

흥분으로 울렁이는 가슴을 꾹 삼키고 또렷히 말했다.

 

"그래도, 동의 없이 찍은 건 잘 못하셨잖아요!"

 

"네, 잘 못했습니다.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습니다. 우산하고 장단지 때문에 정 자신의 신상이 노출될 것 같아 두려우시면은 제 촬영을 다 마치고 보성 읍내에 가서 현상하는 즉시 아가씨가 걱정하시는 필름 컷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자 신분증이니까 한 시간 뒤에 주차장에서 보시죠."

 

신분증과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반 어거지로 외롭게 보였던 싸가지 우산, 그녀에게 쥐어주고 걸음을 빠르고 길게 찢어지려고 했다.

 

"내 참...... 필요없어요. 가져가세요."

 

아까보단 덜 앙칼진 목소리가 등허리에 닿았다.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필요없다니까요."

 

안들리는 척 계속 걸었다.

 

"그냥 길에다 버릴꺼에요."

 

돌아 보지 않았다. 그냥 갈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무작정 갔다.

 

 

그렇게, 가로에 삼나무가 늘어서 있던 산책로를 빠져나왔고, 삼나무 산책로가 끊기자마자 차밭이 층층이 쌓여 있던 언덕 위, 서양식의 잡은 목조 건물을 지나  그녀의 운해가 감싸고 있던 큰 언덕의 차밭을 향하였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빗물을 잔뜩 먹은 녹차잎은 어린 아이의 통통한 뱃살 마냥 탄력있고 부드럽게 싱그러운 녹색의 기운을 뿜어 냈고, 저마다 사람들은 비에 젖은 차밭 고랑에 들어가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마다 하지 않으며, 기념 사진 찍는데 열을 올렸으며,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주목이라도 받을까 두려워, 나의 렌즈와 뷰파인더는 그런 사람들을 비켜서서 찍는 둥, 마는 둥 성의없는 셔터음을 남발했다.

 

싸늘하고 정감없는 차밭을 다 돌고 아까 삼나무 산책로를 지나 주차장을 향할 때 쯤

 

"오상대씨!"

 

오상대는 내 이름이었다. 비슷한 이름은 자기 이름처럼 들리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차가 있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상대!"

 

인적도 별로 없는 이른 새벽과 어둠의 흔적을 작정하고 갈라 놓는 우렁찬 소리에 본능적으로 소리의 발원지를 응시했다.

 

'쳇, 아까 그녀 ㄴ...'였다.

 

"민증 가져가세요. 재발급 받으려면 오천원인데..."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였다.

 

"버리신다면서요. 아무튼 고맙습니다."

 

목례를 하는 듯 마는 듯 눈만 아래로 향하고 신분증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잠깐, 교환할 것 있잖아요."

 

신분증을 줄듯이 내민 손은 회수하며 여자가 말했다.

 

"그건 보성 읍내 가서 해결하시죠."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그럼, 민증도 보성에서 드리죠."

 

"......"

 

말없이 '사람 갖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게 있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한 시간 뒤에 온다더니 삼십분 밖에 안 걸렸네요? 설마 도망가려는 건 아녔어요?"

 

날 갖고 농담이나 따먹으려는 건지,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 '됐거든'이라 외치고, 차에 숨고 싶었다.

 

"날씨도 좀 그렇고, 볼거리도 별로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일찍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모두 별로였는데 남의 사진은 왜 찍었는지 몰라."

 

여자는 아까처럼 은근히 비꼬는 반말을 또 내뱉었다.

 

"다시 한 번 사과 드리겠습니다. 얼른 읍내 가서 정리하시죠."

 

되받아 치고 싶었지만, 되도록이면 빨리 이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저씨 때문에 내 관광을 망쳤으니깐 책임져 주세요."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고, 니가 날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는 스펙이라고 생각되냐?'고 추궁하고 싶었지만 접어 두고, 짜증투로 간단히 대답했다.

 

"뭐요? 뭘 책임지란 말입니까?"

 

"걍, 가이드나 해주세요. 혼자 온 것 같은데, 아저씨 때문에 망친 차밭 구경 다시 하는 동안 내 미모를 탐내는 도촬자들 한테서 지켜주셔야겠죠?"

 

먹히지도 않는 발언을 하는 여자였다.

 

"훗, 농담하십니까?"

 

"캬캭, 싫다고는 안 했으니까 그럼 따라오세요."

 

여자는 어린 애처럼 짧게 웃으며 자기 맘대로 말을 내던지고 아까의 나처럼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에이 ㅅ~"

 

들릴까봐 차마 욕은 못하고 한숨에 비벼서 뱉었다.

 

여자가 가든 말든 40m만 내려가면 별 시덥잖은 곳을 벗어날 수 있을텐데, 점심시간에 전자오락실 갔다가 말없이 손가락으로만 점찍고 돌아서는 학주의 뒷꽁무니를 따라가는 학생처럼 걸음도 빠르지 않은 여자 꽁무니를 갑갑하게 따라갔다.

 

삼나무 산책로를 세번째 벗어나게 되자 여자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저기 언덕 위에 철조망으로 된 문 열려 있었나요?"

 

"몰라요."

 

"모르면 알아봐야죠."

 

그러고는 여자는 산책로를 걷던 걸음 보다 빨리, 경사 있는 언덕길을 식식거리며 오른다.

 

언덕길에서 꽁무니를 쫒다 보니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허리와 엉덩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섹스하기 조낸 힘들군요.)



Comments

재미 없다고. 넌 글 쓰지 말라고
표절이잖아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