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지정 1

혜원 1 2,73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穹蒼)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穹蒼)을 만드사 궁창(穹蒼) 아래의 물과 궁창(穹蒼)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穹蒼)을 하늘이라 칭(稱)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세기 1:6-8)

 

 

 

궁창에 구멍이 났다.

 

하잘 것 없는 공기의 밀도 마저 갈라 버리려는 듯 쑤셔 박히는 물줄기는 대지를 때려치고, 대지는 굉음으로 공명한다.

 

그 대지 위 정처를 향해 의지하는 작은 차안 카스테레오도 대지의 공명에 화답한다.

 

어둠을 뚫고 가녀리게 뻗은 전조등의 불빛만이 대지의 공명에 소심하게 나마 반항하고 있다.

 

궁창과 대지의 찰진 궁합 소리를 관찰하던 여명의 머리카락이 드러나자,

 

궁창과 대지는 부끄러운 듯 둘의 찰진 소리가 점점 작아 지면서,

 

밤새 대지의 미물에 대하여 1데시벨의 배려도 없는 질펀한 괴성을 참아내고 정처인 보성에 다다랐다.

 

 

 

시큼한 몰탈 시멘트의 피가 흐르는 사람에게 머나먼 남쪽 보성은 연고도 추억도 없는 곳이다.

 

단지, 2주전 갑작스레 돌아선 그녀와 여행을 예정했었던 추억은 없으나 미래에 추억이 있었을 뻔한 곳이었다.

 

 

 

5월 초순의 화요일에, 이른 새벽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고,

 

간소하거나 뻑적지근하게 촬영장비를 짊어진 서너 무리가 멀리 삼나무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나 같이 외로운 우산 하나 몇, 나란히 우산살을 맞대고 걷는 몇이 전부였다.

 

 

 

차나무의 뻣뻣한 껍질을 뚤고 공알만큼 오른 차순은 밤새도록 이어진 궁창과 대지의 교미에도 지치지 않고

 

맛을 알아버린 새색시 마냥 신록의 섹시함을 더하여 촉촉한 교태를 부리고 있었고,

 

차밭의 땅덩어리는 격렬한 섹스 후에 나자빠져 담배 한대 빨고 긴 연기를 내뿜으며

 

하이얀 수증기로 촉촉한 신록 사이를 맴돌며  '한 타임 더!'를 외치고 있었다.

 

 

 

쌀쌀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여민 단추 틈을 파고 들며 젖꼭지를 간지럽히는 느낌이 무뎌질 때 쯤

 

중간 산책로 벤치 위에 외로운 우산 하나가 보였다.

 

'무슨 사연이길래 맨 우산으로 차밭 이곳 저곳을 쏘다니는 녀석일까?'라는 사람들의 시선(나의 과대망상)을

 

피하기 위해 달랑 달랑 목에 매고 다녔던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한 외로운 우산을 투시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다시 눌렀다.

 

"찰칵!"

 

또 눌렀다.

 

"찰칵!"

 

외로운 우산이 등을 돌려 시선이 발사된 곳을 향하였다.

 

사정의 순간처럼 움찔했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지만 카메라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저 찍으신 거에요?"

 

우산이 말을 걸었다.

 

"......"

 

"저 찍으신 거냐고요!"

 

"아... 저... 그냥... 여기저기."

 

"나 찍은 거 맞네!"

 

링바닥에 깔려있던 효도르가 잽사게 마운트 포지션을 차지하듯 반말을 하는 우산이었다.

 

 

(나중은 기약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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